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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정리 임오군란이 구식군인 차별로 인해 군인들이 민씨세력과 일본공사관을 습격하고 흥선대원군이 재집권

임오군란이 구식군인 차별로 인해 군인들이 민씨세력과 일본공사관을 습격하고 흥선대원군이 재집권 했다가 다시 청나라의 도움으로 민씨세력이 재집권 했다고 하는데그러면 민씨세력은 청나라, 일본과 친하고 흥선대원군은 아예 어떤나라와도 화친을 반대하는건가요? 민씨세력과 일본공사관 습격이면 둘이 같은 세력이여서 같이 습격한게 아닌건가요나중에 일본인들이 시해하는걸로 알고있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ㅠ정리해주세요

흥선대원군은 전통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청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어왔으니, 기존 청과의 관계를 제외하고

새롭게 조선에게 교류를 요청하는 서양 국가나 일본 등에 대해 모두 교류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죠.

반면 아들인 고종(+명성왕후 민씨)는 달랐습니다.

나이가 젊기도 했고 서양, 일본과 교류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조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죠.

그래서 고종이 성인이 되고 나서(1873년) 직접 왕으로써 정치를 이끌게 되며

조선은 그때부터 국가의 외교 방식을 통상수교거부정책에서 개화정책으로 전환하였고, 외국의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군대 체제도 바뀌게 됩니다.

기존의 군인은 무기도, 전투 방식도 서양 국가에 비해 너무 열악했기에 고종은 새로운 근대식 군대를 새롭게 창설합니다. 이것이 별기군이지요.

조선은 새롭게 창설한 별기군에게 직접 일본인 군사 교관을 초빙하여 근대식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최첨단 무기를 지원해주는 등 별기군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구식 군인들은 '낡아빠진 군대'라고 취급받으며 차별대우를 받았고 심지어는 제때 지급되어야 할 월급까지 밀리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점점 구식 군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개화 정책' 자체를 증오하게 됩니다.

과거 흥선대원군 시기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조선이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군인들에게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백성으로서 개화 정책을 주도한 왕을 직접 증오하면 안되기에,

대신 개화 정책을 주도한 명성왕후 민씨(+민씨 일족)에 대해 분노가 치솟았던 거죠.

또한 일본에 대한 증오심도 매우 높았습니다.

당장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의 문을 열고 근대 문물을 교류하기 시작했던 나라이기도 하고,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이익을 취해 조선의 경제상황이 약화되기도 했거든요.

(때문에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일반 농민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백성들이 임오군란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분노한 구식군인들은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켰고(임오군란), 별기군의 일본인 교관을 살해하거나 개화 정책을 주도한 민씨 일파들을 살해하며 반란을 키워나갔습니다.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기도 했죠.

하지만 임오군란이라는 이 반란을 정리하여 종결지어줄 사람이 없었기에

구식 군인들은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사실상 잃게 되고) 평범한 왕족으로 전락해버린 흥선대원군에게 찾아가 조선의 전통을 회복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마침 권력을 되찾고 싶었던 흥선대원군은 이러한 요구를 승낙했던 것이구요.

대원군을 앞세운 구식 군인들은 국왕에게 향했고(명성왕후는 이미 대피한 상태), 당시 국왕이었던 고종은 반란때문에 사회가 너무 혼란스러웠으므로

우선 반란의 수습을 위해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게 권력을 다시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력을 다시 손에 넣은 흥선 대원군은 구식 군인들이 원하는 대로 조선의 전통을 회복시키는 정책들을 시행해나갑니다.

그동안 고종, 명성왕후가 해온 개화 정책을 하나 둘 취소하고 옛 제도로 돌려놓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피난을 간 명성왕후는 청나라에게 도움을 요청해 다시 돌아왔고,

청나라는 속국인 조선에서 큰 변화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흥선대원군을 그대로 청으로 납치해가며 임오군란은 종결됩니다.

단 착각하면 안되는게 고종과 명성왕후가 개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해서 일본편은 아닙니다.

'일본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개화 정책이 시행된 것은 맞지만

개화 정책의 목적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서 조선을 발전시키는 것' 이기 때문에 일본과 친한 정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다만 나중에 일본이 개화 정책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사실상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을 강화해나가자,

고종과 명성왕후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구요.

이에 러시아에게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뺏길까봐 놀란 일본이 명성왕후를 살해(을미사변)하며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오려고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