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수많은 오타쿠분들.. 부탁드립니다. 때는 아주 어릴 적.. 어떤 애니메이션 영상을 하나 보았었습니다.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감의 그 영상물은 제게 힘든 현실 세상을 잊게 해주는 한 줄기 위로였습니다. 현실에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았던 것 같네요. 분명 저렇게 예쁜 세상도 어딘가엔 있을 것이야, 위로하며 살아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십 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습니다. 삶이 안정되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그때 그 영상의 정체가 대체 무엇일까. 지브리, 지브리 아트필름, 지브리 애니메이션 아트필름, 비현실주의 아트 필름, 판타지 어쩌구.. 존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해 검색해보았지만 그 영상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아, 지식인의 집단 지성을 문제 해결에 동원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래는 제가 생각나는 영상의 특징을 모조리 나열하겠습니다. - 지브리가 공개한 영상물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USB 지브리 폴더에 같이 들어있던 것이라 이 영상 자체가 지브리 것이 맞는진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단서가 될까 싶어 적습니다.)- 영상의 인트로 부분에, 색색의 빛이 쏟아지는 듯한 연출과 함께 흰 원 안 한자 두 자 로고가 도장 같은 느낌으로 중앙에 박혀있었습니다. - 전체 영상을 관통하는 내용이 존재하지는 않는 듯 했으며, 아트 필름 내지는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 전체적으로 판타지와 현실 세상(특히 지브리 특유의 일본+유럽 분위기)이 묘하게 섞인 분위기였습니다. 색상이 비비드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지브리 특유의 형형색색의 녹이, 예쁘게 묻은 듯한 몽글한 색감이었습니다. - 화면 이동은 빠르지 않고 느릿하며, 가끔은 화면이 고정된 채로 그 안의 물체들이 움직이는 컷이 1~2분 정도 지속되고 다음 테이크로 넘어갑니다. - 테이크 중 기억 나는 일부: 1. 낮 배경, 기차가 지나감, 전체적 명도가 밝으며 색상이 다채로움. 2. 밤 배경, 바다 옆 기차역, 건물 내부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옴, 인물이 등장함. 3. 그 외에도 총 씬이 스무 개 정도였습니다. - 인물들은 얼굴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채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고, 주변 환경 속 물체들과 거의 비슷한 존재감으로 표현됩니다. - 대사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BGM와 더불어 생활 소음(기차 벨소리, 바람 소리) 정도가 들렸던 것 같습니다. - 10분 중반 정도의 영상 길이였습니다. (이건 정말 아닐 수도 있지만 제 기억 상으론 그러합니다.) 일상 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그 옛날에 보았던 이 영상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너무 어릴 적의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그냥 제가 꿈에서 본 것을 진짜 보았다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에스비를 컴퓨터에 꽂고 쭈그려앉아 그 영상을 반복해 보았던 어린 날의 제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어서요. 항상 눈물을 달고 보느라 영상이 흐릿하게, 하지만 빛이 번져 더 예쁘게 보였던 게 기억이 납니다. 살게 해줘서 너무 고맙고, 가끔은 이 영상이 그립습니다. 혹시 무슨 영상인지 아시는 분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