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의 서로마 황제위 800년 카롤루스 마그누스가 레오 3세에게 서로마 황제위를 대관받고 나서 서로마
800년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의 대관으로 부활한 서로마 황제위는 카롤루스 왕조의 세습을 거쳐 분열된 왕국들을 오가다 약 40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후 오토 1세에 의해 다시 계승되었습니다.
1. 황제위의 초기 세습과 분열
카롤루스 마그누스 사후, 황제위는 그의 아들 루트비히 1세(경건왕)에게 단독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루트비히 1세 사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면서 황제위의 성격이 변했습니다.
1) 중프랑크 중심의 초기 계승: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왕국이 셋으로 나뉠 때, 황제 칭호는 장남인 로타르 1세가 다스리는 중프랑크 왕국(이탈리아 포함)에 귀속되었습니다.
2) 교차 계승과 혼란: 이후 황제위는 중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를 거쳐, 서프랑크의 샤를 2세(대머리왕)와 동프랑크의 카를 3세(비만왕)가 각각 한 차례씩 차지하며 일시적으로 제국을 통합하기도 했습니다.
3) 황제위의 단절: 9세기 말부터 황제위는 이탈리아의 지역 군주들이 차지하는 명예직으로 전락했습니다. 924년 이탈리아 국왕 베렝가리오 1세가 사망한 이후, 962년 오토 1세가 즉위할 때까지 약 38년 동안 서로마 황제는 공석이었습니다.
2. 오토 1세의 대관과 대립 황제 여부
962년 동프랑크의 오토 1세가 교황으로부터 대관을 받으며 이른바 '신성 로마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 동방 황제와의 관계: 당시 로마 황제 칭호를 공식적으로 보유한 유일한 인물은 2)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였습니다. 오토 1세는 '로마인의 황제' 칭호를 사용하며 동로마와 정통성 분쟁을 겪었으나, 972년 오토 2세와 동로마 공주 테오파누의 결혼을 통해 상호 승인에 도달했습니다.
3) 서유럽 내 대립 황제: 오토 1세가 대관받을 당시, 서유럽 내에서 로마 황제(Emperor)를 자처하거나 대항하는 대립 황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의 통치권을 두고 다투던 경쟁자들은 있었으나, 교황에 의해 정식으로 대관된 황제권은 오토 1세가 유일했습니다.
3. 요약: 황제위 계승 경로
1) 카롤루스 제국 (800~843): 단일 황제 (카롤루스 → 루트비히 1세)
2) 분열기 (843~924): 주로 중프랑크(이탈리아) 국왕이 계승, 간혹 서·동프랑크 국왕이 차지
3) 공백기 (924~962): 서로마 황제위 소멸
4) 신성 로마 제국 (962~): 오토 1세 이후 동프랑크(독일) 왕국이 황제위를 독점적으로 계승